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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게시판]

젊은 스님은 왜 동그라미를 지웠을까?

글쓴이 : 조계사 날짜 : 2019-06-03 (월) 17:22 조회 : 30
    










 
 
 


한 그릇



꽤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 도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한 젊은 스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일주문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장경(章敬)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큰 스님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장경 선사는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수행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그래서 슬쩍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곳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느냐?”

 

젊은 스님은 대답을 했습니다.

 

“8년쯤 지났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8년의 세월 동안 온 몸과 온 마음을 던져 수행을 했으니, 젊은 스님의 내면에서는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을 수도 있겠지요. 장경 선사가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자네는 무엇을 얻었는가?”

 

속살림을 묻는 질문입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그동안 공부를 했다 하니, 어디 보따리를 내놓아 보아라’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근처에 꼬챙이가 하나 보였습니다. 젊은 스님은 그걸 집어들었습니다. 주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겠지요. 젊은 스님은 몸을 구부려 땅에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습니다. 장경 선사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쭉 지켜보던 장경 선사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래, 그것뿐인가. 다른 것은 또 없는가.”

 

그 말을 들은 젊은 스님은 자신의 발을 동그라미에 갖다댔습니다. 그리고 ‘쓱싹쓱싹’ 동그라미를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절을 나가버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입니다. 여기가 이 선문답 일화의 끝입니다. 

 

두 그릇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젊은 스님은 왜 동그라미를 그렸을까. 또 애써 그린 동그라미를 왜 지워버린 걸까. 그리고 8년 만에 돌아온 절집을 뒤로 한 채 왜 떠나버린 걸까. 그게 장경 선사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충분했던 걸까. 그럼 그 광경을 본 장경 선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흐뭇했을까, 아니면 황당했을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답안지’를 뒤적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선문답 해설집이나 풀이를 찾아보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나의 답’이 아닙니다. 그래서 머리로만 이해하는 답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어떡하면 ‘남의 답’이 아니라 ‘나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눈을 감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곰곰이 물어보시면 됩니다.

 

‘장경 선사의 물음에 젊은 스님은 왜 동그라미를 그렸을까’ ‘동그라미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뿐이냐고 묻는 장경 선사의 말에 젊은 스님은 왜 동그라미를 지웠을까’ ‘동그라미를 지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마지막에 젊은 스님은 왜 절을 떠났을까.’ 이런 물음을 내 스스로 궁리해 봐야 합니다. 한 번에 답이 올라오진 않습니다. 궁리하고, 또 궁리해야 하지요. 그 과정에서 나의 눈이 깊어지고, 안목이 자라는 거니까요.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답이 올라옵니다. 거기에 ‘아하!’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때로는 ‘엉뚱한 답’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물고 다시 물으면 되니까요. 그게 명상이고, 참선이고, 살아 숨 쉬는 간화선입니다. 

 

그러니 제가 쓰는 이 글도 하나의 ‘참고’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여러분의 답’을 길어올리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정말 살아 숨 쉬는 답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여러분의 힘으로 길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답’이 됩니다. ‘나의 눈’이 됩니다. 그렇게 ‘나의 눈’을 가지고 있을 때 내 삶의 문제들을 직접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 그릇



그럼 이제 ‘여러분의 답’과 제가 건네는 징검다리를 서로 살펴볼까요. 만약 2600년 전에 살았던 부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시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진리의 자리를 그려주십시오”라고 부탁한다면 어떨까요. 부처님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저는 부처님 역시 큼지막한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냐고요? 진리의 자리는 이 우주를 다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한한 우주를 다 품는 도형이 따로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도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았을까요. ‘공空’을 따로 그릴 수가 없으니 동그라미로 대신한 셈이지요.

 

그걸 본 장경 선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뿐이냐. 다른 것은 또 없는가”라고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더 정확한 답을 내놓으라고 했던 겁니다. 젊은 스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동그라미’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동그라미로 그려낸 순간, ‘공空’은 ‘색色’이 되고 맙니다. 젊은 스님이 우리 눈 앞에 내놓은 것은 ‘동전의 한 면’뿐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장경 선사가 물었습니다. “그게 다인가? 또 없는가?”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젊은 스님은 ‘동그라미’를 지워버렸습니다. ‘쓱싹쓱싹’ 동그라미를 지운 순간, 무엇이 드러났을까요. 그렇습니다. ‘진짜 동그라미’가 드러났습니다. 그게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이 세상입니다. 귓가를 스치는 찬 바람,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 지붕에 남아 있는 잔설들,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모두 ‘동그라미 너머의 동그라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우주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지요.

 

장경 선사의 “동전의 앞면만 말하느냐. 동전의 뒷면은 어디 갔느냐?”라는 물음에 젊은 스님은 ‘동전의 뒷면’을 내놓았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 우주에서 ‘동전의 앞면’과 ‘동전의 뒷면’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말한 겁니다. ‘색色’ 속에 ‘공空’이 있고, ‘공空’ 속에 이미 ‘색色’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또 없는가?”라는 장경 선사의 물음에 젊은 스님은 답을 다 내놓았습니다. 장경 선사는 더 이상 물을 것도 없고, 젊은 스님은 더 이상 답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주고 받은 물음과 답이 모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 스님은 절을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절 안에 있어도, 절 밖에 있어도 어차피 동그라미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선문답 속의 장경 선사와 젊은 스님이 우리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동그라미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동그라미 밖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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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 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이제, 마음이 보이네』『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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